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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뉴스·생활

관람객 호흡·체온에 '몸살앓는 유물'

유럽 유명 박물관 ‘골머리’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관광가이드로 일하고 있는 파트리치아 루치디오가 '기피 1호 장소'로 꼽는 곳은 피렌체의 대표적 명소 중 하나인 아카데미아미술관이다.

이곳에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다비드상을 비롯해 산드로 보티첼리, 필리포 리피 등 13∼16세기 피렌체 문화를 대표하는 화가, 조각가들의 회화와 조각상들이 전시돼 있다.

하지만 루치디오는 최근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아카데미아미술관은 악몽 그 자체" 라면서 "수많은 관광객들이 인증샷을 찍느라고 서로 밀치며, 남의 발을 밟는 등 난리법석을 부린다"고 말했다.

게다가 대부분 일단 사진을 찍고 나면 제대로 작품감상도 하지 않고 다른 곳으로 이동해버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사모트라케의 니케’상이 전시된 계단이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많은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 없이 붐비고 있다.


피렌체에서 활동하는 미술사가 토마소 몬타나리는 매년 여름 시즌에 한꺼번에 몰리는 관광객들로 터질 지경인 미술관들만 생각하면 한숨부터 나온다. 몬타나리에 따르면, 여름시즌 우피치미술관 전시장은 마치 열대 식물원처럼 뜨거운 공기와 습도로 인해 숨조차 쉬기 힘들 정도이다. 그는 "객석이 100개인데 입장권을 300장이나 파는 극장은 없지 않으냐"며, 우피치미술관이 작품 보호를 위해 시설현대화 공사를 완공하기 전까지는 입장객 수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의 저명한 박물관, 미술관들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관람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관람객 증가 덕분에 입장권 판매 수입이 늘어난다는 점에서는 행복한 비명일 수도 있지만, 수용 한계를 넘어설 정도로 관람객들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는 게 문제이다. 관광시즌인 여름철 유명 박물관은 콩나물시루처럼 발디딜 틈이 없을 정도이다. 항온항습 장치가 있지만, 관람객의 폭증세를 따라가기엔 버거운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환경이 전시작품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관람객 수로 세계 1위인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경우 여름시즌에 입장권을 구매하기 위해서는 1시간 이상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한다.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온 관광객 장 미셸 보르다는 NYT와의 인터뷰에서 "루브르박물관의 오후 전시장 분위기가 마치 대도시 아침 출근시간대의 지하철 같았다"고 말했다. 바티칸박물관의 안토니오 파올루치 관장은 시스티나 대성당의 천장화 '천지창조' 등 프레스코화 보존을 위해 관람객 수를 제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바티칸을 찾는 하루 평균 관광객은 약 2만2000명. 시스티나 대성당의 경우 약 2000명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다. 2000명이 한꺼번에 호흡과 체온으로 내뿜는 수분과 열기는 예민한 프레스코화에 악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하지만 파올루치 관장은 '천지창조' 하나만을 보기 위해 바티칸을 찾는 가톨릭 신자와 관광객들이 있는 상황에서 섣부르게 관람객 수 제한 정책을 도입하기는 어렵다고 토로한다.

                    2014년 4월 현재

유럽 박물관, 미술관들이 관람객들로 붐비는 것은 사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하지만 최근 중국 등 아시아 국가와 동유럽, 아프리카 일부 국가에서 중산층 인구가 증가하면서 관광객 숫자도 크게 늘어났고, 특히 여름시즌에는 유럽 유명관광지에 과거보다 많은 인파가 몰리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영국 미술전문매체 '아트뉴스페이퍼'의 지난 4월 조사에 따르면, 루브르박물관의 지난해 관람객 수는 약 933만 명을 기록했다. 올해는 1000만 명 선을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대영박물관의 경우 지난해 약 670만 명이 찾았다. 지난해 약 546만 명이 찾은 바티칸박물관의 경우 교황 프란치스코의 인기가 치솟고 있는 영향으로 올해는 600만 명을 넘길 전망이다. 지난해 약 190만 명이 찾은 우피치미술관도 올해 상반기 관람객 증가세가 전년 동기 대비 5%를 기록했다.


대부분의 박물관, 미술관은 관람객 증가에 맞춰 시설 현대화, 보안 강화, 전시장 확대 등에 나서고 있다. 루브르, 우피치, 바티칸, 네덜란드 국립미술관, 스페인 프라도미술관 등은 관람객 분산을 위해 시간제 입장권 판매제도를 도입했다. 특정 요일에는 전시 시간을 오후 8∼9시까지 연장하는 곳도 있다. 무료입장인 대영박물관과 내셔널갤러리는 특별전의 경우 입장권을 판매한다. 대영박물관은 지난 2011년 레오나르도 다빈치 특별전에 25달러짜리 입장권을 팔아 관람객 수도 조절하고, 막대한 입장권 수입도 올리는 효과를 봤다고 NYT는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