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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뉴스·생활

냉동 식품에 잠식당한 프랑스 레스토랑

프랑스 요리는 세계 3대 요리로 꼽힐 만큼 서양 요리 가운데 최고로 친다. 유네스코는 2010년 프랑스 요리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신선한 재료에 알듯 모를 듯 오묘한 소스 맛, 그리고 레스토랑의 우아한 분위기까지 더해지면 정말 완벽한 식사다. 그런데,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맛본 음식이 이미 조리된 냉동식품을 데워 만든 것이라면 음식을 맛보는 입장에선 충격적일 수 밖에 없다.

           → 프랑스 레스토랑 음식

지난해 프랑스 레스토랑 협회가 조사했더니 프랑스 식당의 31%는 냉동, 가공, 즉석식품 등 공장을 거친 제품을 사용했다고 응답했다. 노트르담 성당이나 에펠탑 등 관광객이 많은 지역의 식당들은 가공식품 사용 비율이 더 높아진다고 한다. 관련 업계에서는 가공식품을 사용하는 식당 비율이 80%를 넘을 거라는 추정까지 나왔다. 몰려드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를 하다 보니 하나 하나 요리를 만들 시간이 없다는게 식당 업자들의 얘기다. 플라스틱 포장을 벗긴 다음 전자레인지에 데우고 보기 좋게 담는 게 주방에서 하는 일에 불과한 것이다. 프랑스 언론은 메뉴가 너무 많은 식당은 냉동식품을 사용할 가능성이 있으니 피하라고 조언했다.

상당수 레스토랑들이 즉석식품을 쓰면서도 가격은 그대로 받자 프랑스 요리의 정체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이대로 가다가는 미식가의 나라, 프랑스의 미래가 없다는 걱정도 있다. 프랑스 정치권은 오랜 논의 끝에 2월 13일 법을 만들었다. 프랑스 의회가 통과시킨 법은 일명 '페 메종'(fait maison)법이다. 프랑스어로 집에서 만들다, 즉 식당에서 직접 조리했다는 뜻인데 영어 식으로는 홈메이드(homemade) 음식이라 할 수 있다. 앞으로 프랑스 레스토랑은 신선한 재료를 이용해 식당에서 직접 만든 요리에는 'fait maison'이라는 로고를 붙이게 된다. 메뉴판에 표시하는 것으로 아무 표시가 없는 요리는 냉장고에서 꺼낸 가공식품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프랑스 브누아 아몽 소비자 장관은 의회 연설에서 "프랑스인의 97%는 식당에서 먹는 음식이 신선한 재료로 만든 것인지 아니면 어디선가 만들어진 음식인지 알고 싶어 한다"고 말했다. 명확한 정보를 제공하고 투명성을 높여 소비자의 권리를 보호하겠다는 의도이다.

                → 분주한 프랑스 레스토랑 주방


법이 통과된 후 지지자들은 프랑스 전통 식당에서 정통 요리가 만들어지면 요리사 등 일자리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 법에 찬성하는 식당 주인들은 "프랑스식 홈메이드 음식을 알릴 기회가 생겼다"고 환영했다. "평소 프랑스 요리에 대한 자부심을 갖고 주방에서 하루 종일 소스를 만들기도 했는데 'fait maison' 딱지를 붙일 수 있어서 요리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반대하는 식당 주인들은 프랑스는 인건비가 비싼데 일일이 요리를 해야 한다면 요리사의 인건비는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걱정했다. 경제 위기와 높은 세금이라는 환경 속에서 생존을 위해 가공식품을 사용해야 하는 업계의 현실을 정치권이 무시했다는 반론도 펴고 있다.

찬반이 엇갈리지만 프랑스 요리의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서는 더 강력한 법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계속 나오고 있다. '레스토랑'이라는 이름을 붙이려면 제공하는 요리의 절반 이상을 식당에서 직접 만들어야 하고, 냉동식품을 쓰려면 '카페' 등으로 부르자는 제안도 그 가운데 하나이다. 식당을 이름으로 분류해 소비자들이 쉽게 알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인데, 논의 끝에 지난해 부결되기는 하였다. 식당에서 손수 만들었다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페 메종' 법안도 마찬가지이다. 홈메이드로 인정받으려면 100% 모든 재료를 손수 가공해야 하는지, 아니면 전체 재료 가운데 몇 퍼센트까지 가공식품을 사용해도 되는 것인지 현장에서는 논란이 계속될 수 밖에 없다. 요리에 홈메이드를 붙인 식당이 계속 잘 지키고 있는지 확인하기도 쉽지 않은 문제이다.

'페 메종' 법안은 프랑스 요리를 살리자는 상징적 의미가 커 보인다. 정치 행위에 그칠 것인지 프랑스 식당가의 흐름을 바꿀 계기가 될지는 소비자가 앞으로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달려 있다. 파리의 레스토랑에서 홈메이드 요리를 맛 볼 것인지 아니면 아무 표시가 없는 음식을 주문할 것인지 손맛과 시간, 주머니 사정, 갈림길에 선 프랑스 요리의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