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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뉴스·생활

에디트 피아프 사망 50주년 프랑스는 추모 열기에

'빠담 빠담'(Padam Padam), '장밋빛 인생'(La Vie en Rose), '사랑의 찬가'(L'Hymne à l'Amour),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Non, Je ne regrette rien)...


에펠탑과 함께 가장 프랑스적인 것으로 꼽히는 이 샹송들을 부른 에디트 피아프(Édith Piaf: 1915-1963)가 오늘 10일로 사망한 지 꼭 50년이 된다.

                             ► 가장 프랑스적인 샹송 가수 에디트 피아프


전설의 샹송 가수 피아프의 사망 50주년을 맞아 프랑스에서는 추모 열기가 뜨겁다.

공영 프랑스2와 TF1 TV 등 프랑스 방송은 그녀의 파란만장한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와 그녀가 부른 대표 샹송을 거의 매일 뉴스에 내보내고 있다. 그녀를 아는 지인들은 다큐멘터리에서 돈과 명예가 아니라 자신의 영혼을 대중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진정한 예술가로 피아프를 기억했다.

각종 추모 공연도 줄을 잇고 있다. 지난달 미국 뉴욕에서 '샹송 디바' 파트리샤 카스 등 프랑스와 미국 가수, 무용가 등이 참가한 가운데 추모 콘서트가 열렸다.
라디오 방송 프랑스 블루는 피아프 노래 중 프랑스인이 가장 좋아하는 곡이 무엇인지 설문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그 어떤 영화나 소설 주인공보다 극적인 삶을 살았던 그녀의 인생은 연극 무대에도 올려지고 있다.

에디트 피아프의 본명은 에디트 조반나 가시옹(Édith Giovanna Gassion)이다.
그러나 그녀의 거리 가수 시절에 목소리에 매료된 카바레 지배인이 실내에서 노래 부를 것을 제안할 때, 불우한 어린시절을 보내 성장이 멈춘 147cm의 가녀린 체구에 맞는 ‘피아프(작은 참새라는 뜻의 프랑스어)’라는 예명도 지어줬다. 이때부터 전설 ‘에디트 피아프’가 탄생하게 된다.

1915년 프랑스 파리 빈민가에서 태어난 피아프는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내고서 초라한 길거리 가수로 살아가다가 국민 가수에까지 올랐다.
이브 몽탕 등 많은 남자와 사귀며 실연의 아픔을 겪고, 교통사고 후 약물과 술에 의존하는 불행한 말년을 보내다 1963년 10월 10일에 48년의 짧은 생을 마감했다.

'샹송의 여왕'으로 불리는 그녀의 삶은 그 자체로 음악이 됐다.
이브 몽탕과의 사랑과 이별은 '장밋빛 인생'이라는 불후의 명곡을 만들어냈다.

              ► 뉴욕에서 에디트와 운명의 사랑을 한 복싱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

세계 미들급 복싱 챔피언 마르셀 세르당과의 사랑은 '사랑의 찬가'로 태어났다.
막 사랑을 시작한 세르당이 비행기 사고로 갑작스럽게 숨지면서 그들의 짧지만 깊었던 사랑의 슬픔은 역설적으로 사랑에 대한 찬가가 됐다.

또 세상을 떠나기 직전 온 힘을 다해 부른 '아무 것도 후회하지 않아'로 그녀는 삶을 예술로 승화시킨 20세기 최고의 샹송 가수로 자리매김했다. 에디트는 마지막 남편이었던 21세 연하남 테오와 함께 파리의 페르 라셰즈 묘지 공원에 묻혀 있다. 에디트와 1년간의 마지막 결혼생활을 끝내고 그녀를 보낸 테오 역시 에디트가 떠난 지 7년째 되던 해에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파리 페르 라셰즈 공원에 묻힌 에디트 피아프의 가족묘(부친, 피아프, 마지막 남편 테오, 딸 마르셀(2세)

2007년 6월에 개봉한 그녀의 일대기를 영화화한 '라 비앙 로즈(La Môme, 영어제목은 La Vie En Rose)'는 주연을 열연한 프랑스 여배우 마리옹 꼬띠아르에게 아카데미상, 세자르상, 골든 글로브상 여우주연상을 등을 안겨 주기도 했다. 그녀의 삶을 소재로 한 드라마도 여러 편 제작되었고, 연극 ‘에디트’, 창작 뮤지컬 ‘빠담 빠담 빠담’, 발레 뮤지컬 ‘사랑의 찬가’에 이르기까지 ‘작은 참새’ 에디트의 인생에 깃든 노래와 사랑 이야기는 지금도 무대에 오른다.

그녀의 특기인 심금을 울리는 발라드는 애끓는 목소리로 가창되었다. 우렁차면서도 애절한 음색, 프랑스어의 아름다움을 유감없이 보여준 샹송으로 그녀는 사망 50년 후에도 '불멸의 샹송 가수'로 프랑스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사랑받고 있다.